5일간 남편과 아내 역할을 바꿔해봤더니

《45분 대 227분. 국내 부부의 하루 가사노동 시간이다. 물론 앞의 것은 남편, 뒤는 아내다. 아내들은 ‘독박가사’ ‘독박육아’에 아우성이다. 그 나름대로 열심히 집안일을 ‘도운’ 아빠들은 억울하단다. 한 맞벌이 가정에서 ‘부부 역할 바꾸기’ 실험을 닷새간 해봤다. 과연 이 가정엔 어떤 변화가 생겼을까.》

네 살배기 딸과 10개월 된 아들이 잠들자 부부는 식탁에 마주 앉았다. 맞벌이 부부인 김태규(34) 이한나 씨(35)는 A4 용지 한 장씩을 앞에 두고 각자의 하루 일과를 시간대별로 촘촘히 써내려 갔다.

‘첫째 깨우기’로 시작된 아내 이 씨의 하루 일과는 어느새 A4 용지 한 장을 가득 채웠다. 반면 남편 김 씨는 출근과 퇴근 전후 3, 4가지 일과를 쓰고 나니 더 쓸 게 없었다. 부부는 서로의 일과를 교환했다.

이후 11일부터 15일까지 닷새간 남편은 아내가 써준 일과대로, 아내는 남편의 일과대로 생활했다. ‘부부 역할 바꾸기’ 실험은 그렇게 시작됐다

○ 아내로 산 남편, “내가 TV를 볼 때도 아내는…”

김 씨는 첫째 아이가 돌을 맞은 이유식을 직접 만들었다. 퇴근 후 재료를 사 와 옷도 갈아입지 않고 이유식을 만들면서 ‘육아 잘하는 아빠’라고 자부했다.

하지만 아내 역할을 한 첫날 생각이 바뀌었다. 아내는 자신보다 1시간 이상 일찍 일어났다. 아내가 써준 대로 기상과 함께 식사 준비를 시작했다. 이어 첫째 아이를 유치원 버스에 태워야 하는 오전 9시 전까지 아이들 씻기기, 옷 입히기, 유치원 준비물 챙기기 등 해야 할 게 너무 많았다

급한 마음에 아이들을 평소보다 일찍 깨우자 역효과만 커졌다. 일어난 아이들은 짜증부터 냈다. 겨우 달래 아침을 먹였지만 어떤 옷을 입혀야 할지 난감했다. 고민하는 사이 유치원 버스 도착 시간이 됐다. 첫째 아이는 양치질도 못 한 채 유치원 버스에 올랐다. 

출근 전 집 안 정리를 시작했다. 방바닥에 유난히 얼룩이 많았다. 아내에게 “이게 다 뭐냐”고 묻자 “1년 전부터 있던 얼룩”이라며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세탁기를 돌리려니 세제를 얼마나 넣어야 할지, 탈수를 몇 분이나 해야 할지 막막했다.

근무 중에도 퇴근 후 집안일 생각에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퇴근을 하자마자 저녁식사 준비를 해야 했다. 계란 반찬과 멸치볶음 등을 꺼내 아이들을 겨우 먹였다. 두 아이를 씻기니 오후 10시. 주방과 거실을 정리하고 나니 자정이 훌쩍 넘었다. 생각해 보니 퇴근 후 자신이 TV를 볼 때도 아내는 끊임없이 아이들을 돌보고 있었다

○ 남편으로 산 아내, “몸은 조금 편했지만…” 

이 씨에게 닷새간의 실험은 인내의 시간이었다. 가사와 육아로 쩔쩔매는 남편을 보면서 ‘차라리 내가 하고 말지…’란 생각이 수없이 들었다. “제 눈에는 해야 할 일이 막 보이는데, 남편 눈엔 보이지 않나 봐요. 진짜 모르는 건지, 모르는 척하는 건지….”

그래도 출근 후 마음은 편했다. 엄마들은 출근 후에도 머리의 반은 ‘가정’에 남겨 둔다고 한다. 저녁거리는 뭘 해야 하는지, 장은 어떤 걸 봐야 하는지, 내일 유치원 준비물은 뭔지, 아이에겐 어떤 옷을 입혀야 할지…. 혹 유치원에서 ‘아이가 코피를 흘렸다’는 문자메시지라도 오면 머릿속은 온통 아이 걱정뿐이다. 당장 이런 일을 남편이 맡아주니 한결 홀가분했다

5일간의 ‘짧은 실험’ 뒤 부부가 내린 결론은 이것이다. 먼저 가사 분담과 관련해 대화를 많이 나누는 일이다. 대개 남편들은 ‘알면서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몰라서 못 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아내는 남편에게 정확하게 어떤 일을 언제까지 해 달라고 구체적으로 요청하는 게 중요하다. 남편 김 씨는 “내가 해야 할 가사나 육아를 아내가 명확하게 정해주면 아내가 말을 하지 않아도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실험의 두 번째 결론은 ‘핀잔주기보다 칭찬하기’다. 설거지를 한 남편에게 “그릇에 기름기가 남았으니 더 깨끗이 하라”고 핀잔을 주기보다 “고맙다”고 하면 남편을 가사와 육아에 더 쉽게 동참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티가 나지 않는 게 집안일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게 아내다. 아이를 키우는 집이라면 치우고 또 치워도 끝이 없다. 아내 이 씨는 “남편이 해야 할 일을 정확하게 부탁한 뒤 자주 칭찬을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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